"이랑아아!”
강혜윰, 낭랑 17세의 평범한 고등학생. 평범한 등굣길에 친구를 부르는 중이었다.
근데 계속 무시하고 있었다. 아무리 나라도 이게 계속 반복된다면..조금 화가 날지도 모르겠는데?
“야, 신이랑!”
“...”
“너 계속 나 무시할 거야? 응?”
그렇지만 우리의 신이랑은 오늘도 답이 없었다.
우리가 크게 싸운 것도 아니고, 내가 개미만큼 목소리가 작은 것도 아닌데. 왜 날 무시하고 가버리는 건데!
새 학기 초반이었기에 이른 봄이니만큼 춥긴 추웠다. 아직 잎이 돋아나지 않은 나무들이 유난히 앙상하게 보였다. 그러고 보니 이랑이 좋아하는 것이 생각났다.
“랑랑, 벚꽃 좋아하지?”
“...”
“나중에 벚꽃피면 같이 보러 가자!”
물론 철벽 신이랑은 여전히 답이 없었지만.
그리고 학교에 등교해서야 교과서를 깜빡했단 사실을 깨달았다. 잠깐 일이 있어서 집에 두고 왔었지!
“랑아.. 교과서 같이 보면 안 돼?”
“...”
“나 오늘 집에 두고 왔단 말이야..”
이랑은 여전히 아무 말도 없었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말이 없는 게 가능한 건가?
이랑의 책상에 펼쳐져 있던 교과서가 내 쪽으로 살짝 밀려왔다. 나는 화색이 도는 얼굴로 이랑에게 말했다.
“고마워, 랑아!”
“...”
이랑의 호의는 여기까지였나 보다.
쳇. 생색이라도 내면 몰라, 계속 이렇게 아무 말 없이 있는 게 더 싫은데. 의자에 붕 뜬 다리를 동동 구르고 있으니 이랑이 주먹을 꽉 쥐는 것이 보였다.
어라. 산만하다고 싫어하는 건가? 나는 살살 눈치를 살피며 자세를 다소곳하게 바꿨다.
“2인 1조로 모여서 배드민턴을 할 겁니다.”
“랑아! 당연히 나랑 할 거지?”
“..선생님, 저 짝이 없는데요.”
“야! 아까부터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이것 외에도 다른 활동이라던가, 급식실이라던가. 애원을 한들 이랑은 나와 눈을 마주쳐주지도, 말을 걸지도 않았다. 비틀거리며 이랑의 곁을 걸어가고 있었으나, 이랑은 괜찮냐는 안부도 묻지 않았다.
“그만해.”
“랑아?”
“.. 이제 그만하라고.”
여태까지 내게 말 한 마디도 없던 이랑이 입을 열었다.
뭘 그만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으니 이랑은 지긋이 입술을 짓씹었다.
입술 다 상할 텐데. 걱정 어린 눈으로 쳐다보니 이랑은 진절머리 난다는 듯이 소리쳤다.
“강혜윰!”
“응, 이랑아.”
“이제 그만해.”
“뭐를?”
이랑은 바로 말을 꺼내지 못하며 입술을 달싹였다.
나는 그런 친구를 차분히 기다리며, 이랑의 모습을 천천히 살폈다. 창백한 안색과 대비되는 새까만 머리카락. 눈물 어린 검은색 눈동자와 붉어진 눈가. 이래가지곤 완전 실연당한 학생 같은 모습 아닌가. 장난 어린 생각을 하며 기다리니 이랑의 입술이 열렸다.
“넌..”
난?
“이미, 죽었잖아.”
말하는 것이 힘들었는지, 두 번 나눠 말한 것에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내 시야에 피에 젖은 교복이 보였다.
사인은 간단했다. 교통사고. 희귀 혈액형. 혈액 부족.
“이제 너도 그만 갈 길 가라고.. 이 정도로 무시했으면 너도 이젠 질릴 때 되지 않았어? 그러니까, 이제 그만..”
“그치만, 우리 랑랑은 나 없으면 안 되잖아.”
그 말을 들은 이랑은 참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렸다.
봄이었지만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소소리바람이었다.
|조아요 장곡고1|